
원삼국 시대는 삼한시대라고도 하며 고조선이 멸망하고 본격적인 왕국으로 성숙하기 전의 한반도의 원사시대를 말한다. 명칭을 놓고 시대를 나타내는 특징이 크게 없는 등의 문제가 제기되었으나 단어가 관습적으로 굳어져 통일되지 않았다.
국가 병합과 유물
전쟁을 하면서 그 가운데 힘이 없는 국가를 병합하여 발전하여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병합과 함께 여러 다양한 문화가 융합하게 되었다. 또한 시설을 구축한 이후 옥저, 동예, 고구려, 진한, 마한, 변한, 탐라, 우산국과 같은 연맹체 왕국 즉 초기 국가들이 다수 출현하여 등장하게 되었다. 문헌사학계에서는 부족 국가 시대, 성읍 국가 시대 등으로 다양하게 명칭 하였다. 이러한 용어상의 불편과 불합리를 줄이기 위해 고고학자 김원용이 제창한 용어이다. 원삼국 시대의 문화상으로 이전의 고인돌·돌넘무덤 등이 점차 소멸하면서 덧·널·돌덜넛무덤 등이 성행하였다. 경질무문토기인 와질토기가 등장하여 확산되었다. 와질토기는 기와의 질감과 비슷하다. 그릇 모양은 민무늬토기에서 변화된 것들이 많다. 광주 신창동에서 발견된 최고의 현악기 유물로 고대부터 끼가 넘치는 민족임을 보여준다. 한조가 쓴 삼국지의 위서동이전에 보면 한반도에 낙랑과 대방군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이 노래하는 것과 춤추고 술 마시기를 좋아한다고 소개하였다. 말을 길들이거나 꾸밀때 사용하는 도구로 고조선 말기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말을 조종하는 도구로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철기의 본격적인 생산과 보급 및 도래 및 발달과 벼농사를 비롯한 농경의 발전 등으로 요약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 철기류를 보았을 때 당시 철기제조기술이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삼한(마한, 변한, 진한)에서 사용했던 농기구들은 철기를 사용하는 문화가 한반도 남쪽으로 점차 내려와 보급되었음을 볼 수 있다. 유물로 송풍관, 철광석, 쇠망치, 쇠도끼가 있다. 이러한 도구들은 흙을 파서 옮기거나 급수나 배수를 위한 물길을 트는데 효율적으로 사용되었기에 농업 생산량이 늘어날 수 있었다. 고대인들은 조령신앙을 믿었었다. 그렇기에 한반도에서는 청동기 새를 형상화한 유물이 많이 발견되었다. 삼한의 유적에서도 새 모양 토기와 새 무늬 청동기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어서 새와 관련된 의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여러 나라
여러 국가 중 부여는 만주에 존재했던 예맨족의 고대 왕족이다. 고조선 후기부터 삼국 시대 중반까지 존재했던 나라이다. 고조선과는 다른 지역에서 공존했던 국가이며 고구려나 백제와 같은 한민족의 조상이 되는 국가들이 부여를 계승하게 되었다. 부여는 동, 남, 북, 졸본, 갈사 등 여러 부여 국가가 존재하였다. 홀본부여는 고구려로 지칭하기도 하였고 남부여는 백제가 지칭하기도 하였다. 오랜 기간 잔존하였지만 기원 5세기 동부여가 광개토대왕에 의해 멸망하면서 맥이 끊어지게 되었다. 이 지역에도 세형동검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정치 집단으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낙랑군에 의해 일시 지배와 독립을 반복하다가 결국 고구려에 합병되게 되었다. 동예는 옥저의 남쪽의 함경남도 원산부터 강릉, 경북 영덕에 이르는 동해아 지역의 부족 국가 집단이었다. 이 지역도 낙랑군의 영향권에 있다가 고구려와 신라에 병합되면서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역사 기록에는 동예와 관련된 기록이 종종 등장하고 있다. 마한은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 4세기까지 경기도와 충청도, 전라도 지역 일대에 존재했던 소국 연맹체였다. 목지국을 중심으로 54개 소국 연맹체로 구성되어 있었다. 마한의 마는 고대어를 음역 한 것으로 추정되며 특별한 의미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진한은 마한보다 더 빠르고 더 오랜 기원 1세기에서 기원 6세기까지 경주와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했던 나라이다. 성벽과 집이 있었고 마을마다 우두머리 군장을 두었는데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수장국이 한 번도 바뀌지 않고 처음 수장국인 사로국이 계속 발전하였다. 이후 각 삼한은 한반도 이남의 마한은 백제의 남하로 병합되었고 진한은 신라, 변한은 가야로 각각 계승되어 발전하게 되었다.
종합적인 평가
역사적 기록이 많이 있지는 않지만 수많은 도시국가들의 연합체들로 볼 수 있다. 독립적인 나라들은 한반도 북부지역과 어느 정도의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끼리 서로 문화와 생활 습관 등이 비슷하였고 또 서로 전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점점 국가의 모습을 띄는 진정한 의미의 과도적 시기로서의 위상을 지니고 있다. 외부로부터 남겨진 기록이 단편적이니만큼 문헌사료로 시대상을 복원하기에는 한계가 있어서 새로운 문헌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고고학에 의존해야 하는 시대이다. 발굴조사를 비롯한 연구가 매우 저조하였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90년대 이후 신도시 건설이 활발해지고 시대가 점점 변하였다. 동북공정과 함께 추진되어 왔으며, 전후하여 많은 발굴과 보고서가 발간되면서 그동안 부족했던 고고학적 자료가 많이 축적되었다. 다수의 연구자들은 다양한 접근으로 여러 시각으로 문화 복원에 힘써왔다. 이런 노력에도 여전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이 있다. 고구려부터 모든 것을 포괄하는 용어로 사용될 것을 기대하였지만 달리 실제로 원삼국 시대 명칭은 한반도 남부 지역만을 지칭할 때만 사용되었다. 그 외에는 고구려, 옥저, 동예 등을 지칭한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앞으로 이 용어의 사용을 더욱 확대하여야 한다. 한반도 남부 지역뿐만 아니라 북부 지역까지 포괄할 수 있는 용어로 정착시키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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