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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한국사)

철기 시대 대표적인 유물, 고대 국가적 발전, 평가와 발굴조사

by 한국 역사(한국사) 2024. 3. 21.

철기 시대 대표적인 유물, 고대 국가적 발전, 평가와 발굴조사

철기 시대는 도구와 무기와 같은 철 도구를 만드는 데 주로 사용되었던 시기이다. 예외가 많아 정확한 정의는 아니고 고고학의 관습적인 구분이며 고대로 분류된다.

대표적인 유물

기원전 300년경부터 서기 300년경까지의 시기에 해당되며 선사시대를 분류하는 마지막 단계로 가장 정교한 철 제품이 개발된 시기이다. 인간이 철로 만든 도구를 처음으로 사용하게 된 시기는 기원전 4~3세기 경이지만 본격적인 생산은 기원전 1세기 경으로 보고 있다. 초기까지 청동기들은 계속 만들어졌고 유적지에서 발견된 거푸집을 보아 청동기가 더욱 발달되어 세련된 청동기들을 사용한 것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유물로는 세형동검이 있다. 중기에는 철은 새로운 금속기로 인간이 도시나 국가를 형성하는 단계로 들어서면서 등장하게 되었다. 북방 지역으로까지의 교류가 생기면서 일차적 금속 문화가 들어오게 되었으며 철기를 사용하게 되면서 철기는 다양한 방면에서 많은 영향력이 생겼다. 지역에 따라서 철의 사용에 대한 내용이나 시간적 위치가 조금씩 다르다. 철의 문화가 들어오게 되면서 철기 사용이 시작되었지만 대체적으로 몇 가지의 농기류만이 사용되었다. 후기에 이르러서는 농기류 외 다양한 철제 무기를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기존의 동검을 대체하여 철검이 제작되었고 기능 또한 세부적으로 분류 되었다. 철의 문화가 점차 확산되었고 기반으로 독자적이고 토착적인 철을 이용한 생산이 돋보이게 되었다. 또한 중국화폐인 명도전이 철기 시대의 유적지에서 출토되면서 중국과의 활발한 교류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철기 시대의 문화적 양상은 각 지역별로 특성에 따라 다소 차이점을 보였다. 정치 형태나 사회 구조의 발달과 변화는 어느 지역이나 어느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경제 생활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고대 국가적 발전

신석기 시대까지 경제생활은 원시적인 생산 활동이 행해지고, 씨족 공동체적인 수립 및 채집 활동만 행해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때까지 단계에서는 힘에 의존한 통솔이나 지배는 없었고 다만 타 지역 간의 수확물이 물물 교환 될 때에 그 교섭을 위한 대표자적인 존재만 필요했을 뿐이다. 철의 기술이 도입되면서 만들어진 철제 도구나 농기구는 기존의 석기나 청동보다 단단하였기 때문에 널리 사용될 수 있었으며, 땅을 깊이 갈 수도 있고 훨씬 튼튼하여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었다. 이는 농업 생산량을 크게 증가시켰다. 철로 만든 무기를 사용하게 되면서 많은 가축과 식량 등을 차지하기 위해 여러 부족 간에 서로 다툼과 정복이 더욱 빈번하게 일어났다. 사회 계층화가 뚜렷해졌고 인구가 크게 증가하면서 직업이 다양해졌고 철을 아주 잘 다루는 집단도 생겨나게 되었다. 강력하고 다양한 무기를 가질 수 있어 주변 지역을 아우르며 힘을 더욱 강하게 키워나간 집단을 중심으로 부족간의 통합이 더 활발하게 이루어져 집단이 모여 새로운 국가가 출현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제철 기술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생활도구 및 농기구, 무기 등이 만들어지면서 본격히 고대 국가로의 발전과 국가에 원동력이 되는 크나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철기 시대의 생활 모습은 농사 생산성의 증가로 인해 사람들의 삶이 변화하였다. 농사에 의존하는 생활을 지속하면서 사람들은 식량의 안정적인 공급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는 사회적인 안정과 경제적 발전을 가져왔다. 또한 목축과 양돈이 발달하였으며, 가축을 통한 식량 생산이 더욱 증가하였다. 농사 기술은 오늘날 현대 농업에도 계승 되었으며, 농업 생산성의 증가로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도자기와 금속 공예 등 다양한 예술 작품이 생산되었으며, 특히 대표적인 예술품으로는 실체를 형상화한 동상이 있다. 또한 한문적으로도 철학과 철기학 등 많은 분야에서 발전하였다. 유적지에서 붓이 발견된 것을 보아 한자를 기반으로 한 문학 작품도 창작되었음을 볼 수 있다.

평가와 발굴조사

문화는 무쇠와 강철이 거의 동시대에 발전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철기의 자체 제작을 습득하여 다양한 형식으로 변화시키고 발전시켜서 토착 문화의 발달을 가져오게 되었다. 풍부한 철광석이 많은 낙동강 유역(현재 김해 지역)에서부터 우수한 기술로 철을 대량으로 생산하였고, 주변 국가 및 외국과 교역을 활발하게하여 철의 문화를 더욱 발전시켰다. 연구는 오늘날 유적 발굴 조사의 발전과 그를 통한 유물 수의 증가로 인하여 많은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유적지로는 왜군산성, 우리 사천성, 첨성대, 명덕왕릉, 강서구리방지구, 소야리고분군 등이 있다. 논란이 많은 초기 철기 시대와 고대국가가 형성된 시기의 양상도 유적 발굴 조사로 체계적인 기록을 통하여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철기 시대의 발전은 환경 파괴와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기도 하였으며, 철기 시대의 시대 구분 용어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많다. 우선 문제점으로 역사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또한 철기 초기와 원삼국 시대의 경우 철기 초기를 단일 시대로 설정하기에는 부족하고 원삼국 시대 역시 역사학계에서 거의 수용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삼국 시대의 경우 한반도 남부 지역에 한정된 용어라는 문제점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으로 인해 이 시기의 용어를 통일하기 위한 향후 논의가 필요하다. 또한 이러한 점을 뒤돌아보며 철기 시대의 성취와 문제점을 고려하여 현대 사회의 발전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