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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한국사)

역린 역사 배경, 시놉시스와 의견, 여담과 후기

by 한국 역사(한국사) 2024. 6. 5.

역린 역사 배경, 시놉시스와 의견, 여담과 후기

역린 영화는 이재규 감독의 브라운관이 아닌 스크린에 첫 입문 작품이다. 현빈이 제대 후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작품이기도 하다. 다른 판타지 사극과 달리 조선 22대 왕 정조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한 남자를 둘러싼 암살 음모를 그린 사극이다. 현빈은 연기 인생 최초로 사극에 도전했다. 티저가 공개되어 많은 화제를 모았는데 등장하는 궁궐은 사실 만월대 재현한 세트장이다.

역사 배경

실제 역사에서 정조는 영조 말년과 재위 초에 암살 위협과 반역에 시달렸다. 이 극은 초기 홍씨 일족의 암살 기도 사건을 다루고 있다. 다만 노론 사관은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달리 이덕일 일당이 만든 허구가 대부분이었고 정적으로 통했던 벽파와 동맹에 가까웠다. 그리고 자객을 고용해 존현각에 잠입한 사건 역시 벽파와는 무관한 사건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당시 기록되어 있는 문서를 참고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괴한들이 거처인 곳에 침입한 사건인 정유사변을 담은 것이다.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에서는 나타내는 것과 달리 암살 시도는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지붕을 뚫기 위해 기와를 파다가 밤늦게까지 책을 읽던 임금이 홍국영에게 수색을 지시했고 이는 미수로 끝났다. 붙잡히지 않고 가까스로 탈출한 뒤 재 침입하여 두 번째 시도를 한 일당이 체포되고 그 배후가 남양 홍씨의 존재로 밝혀진다. 노론과 협력하여 세자 즉위에 반대하는 세력의 일원이었다. 이미 사망한 상태였지만 사도세자의 아들이 즉위하는 것에 가족들은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세력의 일당들은 정조의 즉위에 반대하다가 유배되었다. 이로 인하여 손자와 그의 가족들은 암살단을 궁내에 잠입시켜 정조를 죽이려고 하였다. 은전군 이찬을 군주의 자리에 앉히려고 하였으나 이 사실이 발각되어 일족은 처형되거나 유배되었다. 과정에서 혜경궁의 주변인들도 다수 가담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홍씨의 처가 무속인을 사주하여 저주한 사실이 발각되었다. 홍상범이 영화에 잠깐 등장하여 음모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그려지지만, 결정권은 정순왕후가 쥐고 있고 그녀의 역할은 훨씬 크다. 정순왕후가 최대적이라고 하는 등 매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 노론의 독재에 항거했다는 점, 사도세자와 불화를 일으켰다는 점 등 이덕일이 선호하는 음모론이 다채롭게 기록되어 있다. 

시놉시스와 의견

끊임없는 위협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가장 신뢰하는 신하 상책은 그림자처럼 그의 곁을 지킨다. 해가 뜨며 웃어른에게 아침 인사를 하기 위해 대비전으로 간다. 임금의 호위를 맡고 있는 금위영의 대장 홍국영과 상책이 그를 따라간다. 주상이 다치면 건강이 좋지 않을 것이라며 아들의 안위를 걱정한다. 최고 권력자인 정순왕후는 자신의 비문을 통해 야망을 드러냄으로써 경고한다. 거처인 존현각에는 세답방 나인의 일원인 월혜가 옷을 가지러 가고, 어머니 혜경궁이 찾아와 어젯밤 꿈이 좋지 않았다고 말한다. 한편 궁궐 밖에서는 조선 최고의 실력을 가진 살수가 오늘 밤 임금의 머리를 잡아달라는 광백의 은밀한 요청을 받는다. 엇갈린 운명의 24시간이 시작된다. 아쉬움이 크다는 평이 대다수였다. 감독이 드라마 제작자 출신이라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 것으로 보였다. 우선 첫 장면과 중간 이야기를 지나치게 끌어 지루했고 불필요한 씬이 삽입돼 전체적인 줄거리가 산만하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개봉 이후 많은 일반 관객들이 볼만한 작품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빈의 뒤태의 신체적 매력에 상당 부분에 가려져 배우들의 연기력이 빠진 것에 실망감을 표하고 있다. 역사 왜곡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홍국영이 훈련대장으로 임명된 이후 줄곧 전적으로 충성했던 신하들이 난데없이 반대의 세력 군사로 묘사된다. 이후 구선복은 상계군 이담을 군주로 올리기 위해 반역을 모의했으나 극 중에서 상관으로 묘사된 정순왕후에 의해 발각되어 처형 된다. 어쨌든 실제 역사 연구와는 반대로 스토리가 엉망진창이어서 완성도와 상관없이 팬들이 매우 불편하게 봐야 할 확률은 100%이다. 관객들의 반응은 이미 반신반의하였다. 

여담과 후기

마케팅의 일환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개봉 전 공개된 여러 이미지 중 여성 관객을 겨냥한 듯한 현빈의 뒷모습이 담긴 사진이 이슈가 됐다. 그 정도로 허리 근육을 키우려면 체지방 관리와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해야 했던 점을 알 수 있다. 이번 영화로 복귀를 앞두고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짐작하였다. 종종 과중한 업무에 부담을 느낀 조선의 군주가 이런 근육을 가졌을 것은 낮아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은 경우는 꽤 있었다. 태조 이성계는 말이 필요 없는 장군이었고 정종 역시 장군이었다. 세조의 경우 한겨울에도 옷소매를 뜯어서 팔뚝을 드러내거나 얇은 옷을 늘어뜨려 근육을 과시하는 것을 즐겼다. 효종의 경우에는 북벌을 주장하면서 무예를 연마하기도 했다. 그가 사용하던 운동 도구가 너무 무거워서 다른 사람들이 사용할 수 없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의 경우 아버지가 뒤주에서 비참하게 죽는 것을 지켜보며 자라서 할아버지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에 자신의 안위를 매우 걱정했다. 실제 역사에서 수많은 암살 위협을 받았다. 그는 정치적 견제를 받는 임금이기도 했다. 따라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호신술을 연마하였으며 무예도보통지를 저술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직접 수련하였음을 암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과정에서 제24회 무예보존회의 도움을 받은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특히 활쏘기에 뛰어나며 지휘봉을 세워 두드리거나 부채를 펴서 총을 쏘고 접을 수 있다. 또한 현재 전해지는 초상화들을 볼 때 그는 상당히 살이 없는 인물이었다는 점이 정설이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책을 읽는 시늉을 하며 역기 훈련을 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는 무술 외에도 의학도 공부했다. 심지어 자신의 약이나 간단한 감기약까지 직접 처방했다. 그는 정치와 식견에도 매우 능하여 신하들에게 공부를 충분히 안 한다며 기억력이 그렇게 안 좋으냐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책을 읽고 한때 그 위치와 몇 페이지 몇 줄에 걸쳐 있었는지 기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