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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한국사)

사도 줄거리, 감상평과 실제 역사 차이

by 한국 역사(한국사) 2024. 6. 3.

사도 줄거리, 감상평과 실제 역사 차이

사도 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1762년 임오화변을 배경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사건들을 병렬적인 시간 구성으로 보여준다. 점차 의식을 잃어가며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의 관계, 죽음에 이르는 상황을 그려낸다. 어릴 적 남다른 총명함으로 영조의 환희가 되었으나 점차 무예에 관심을 갖고 자유분방한 기질을 지니게 된다. 뜻대로 완벽한 아들이 되고 싶었지만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았다. 밀어붙이기만 하는 아버지를 점점 원망하게 되고 나서 이 둘 사이의 비극이 시작된다. 

줄거리 내용

도입부에서 사도는 영조가 있는 곳을 마치 분노에 찬 사람처럼 바라본다. 첫날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영빈으로부터 어젯밤 세자가 한 일을 듣고는 어전으로 나오라고 한다. 그냥 앉아 있는 혜경궁 홍씨의 냉담함에 경악한다. 각종 냉기와 굿 도구를 가지고 와서 자신을 저주하려는 것이 아닌지 따져보았다. 더 이상 들을 말이 없다며 칼을 내밀어 죽은 자로 대접받으면서 본인을 위한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비꼬았다. 자결하라는 명령을 던지고 비명을 지르며 도대체 이런 법이 어디에 있느냐며 반항한다. 의금부로 끌고 가서 심문을 하라며 악에 못 이겨 칼을 들어 스스로 목을 베려 하지만 신하들이 뒤에서 들어와 제압하였다. 거듭 머리를 바닥에 부딪혀 자살을 시도한다. 소동을 보다 못해 차라리 명하여 뒤주를 가져오게 하고 세자가 스스로 들어서자 임금이 직접 뚜껑에 못을 박는다. 글을 막 읽는 법을 익히던 과거가 겹쳐지면서 본격적으로 스토리가 시작된다. 영조는 애정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친절한 말로 표현하지 않고 완벽함을 요구하며 무리하게 공부하도록 강요하였다. 복잡한 정국과 왕실의 운명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대신 끊임없이 검열하고 꾸짖었다. 정권을 맡은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스스로 결정을 내릴 때는 왜 스스로 결정했느냐고 물으며 나무랐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물을 때는 한 가지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대리인 노릇을 하게 한 것이 보람이 없다고 하였다. 다시 장면이 바뀌면서 폭우 속에서 죄를 짓고 있던 그는 결국 분노를 폭발시키고 상복을 입고 측근들과 함께 살해하기 위해 경희궁으로 향한다. 반역을 획책했으나 후손들을 위해 이를 포기했다고 한다. 뒤주에 갇힌 지 7일째 되는 밤. 어쩌면 처음으로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며 신하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학문과 예범에 목숨을 걸었던 사실을 말한다. 예전에 가혹하게 대했던 의도가 모두 사라진 것을 한탄했다. 자신을 가치 있는 군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고 고백한다. 이윽고 생사의 문턱에 이르러서야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감상평

작품을 보면 얼마나 처참한 일인지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콤플렉스로 계속 고통을 받는 인물로 등장한 사도세자는 영화 속에서 가장 불쌍한 인물로 그려졌다. 뒤주에서 계속 목이 마르고 굶는데 세손이 그의 외침을 들으며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관객의 입장에서 그의 행동을 보면 변덕스러운 임금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 미쳐버리는 행동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알 수 있다. 더 무서운 것은 이 모든 것이 사료에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실제 기록보다 더 미화되어 왔다. 악행을 시간적 제약으로 더 많이 참가하지는 못했더라도 당연히 결말에 사죄하는 마음은 없었고 말년에 후회나 회개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평점이 8점 안팎으로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가 많은 편이다. 배우들에 대해서 송강호, 유아인 등 주연 배우들의 연기뿐 아니라 아역 연기까지 훌륭하다는 의견이 많다. 눈시울을 붉히며 관람한 이들이 지속적인 인상을 남겼다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방식 때문에 그 시대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는 말이 있다. 참담한 상황과 좋은 과거의 상황을 비교함으로써 시청자로 하여금 더욱더 절실하게 느끼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 불필요한 장면으로 특별 출연한 소지섭이 성년의 정조 역할로 부채춤을 추는 것은 생각보다 길고 지루했다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해 이준익 감독은 상징성을 부각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지만 팬들의 반응은 다소 실망스러웠던 것 같다. 그 결과 당초 기대했던 천만 관객에 못 미쳤을 뿐 최종 수는 624만 명을 기록하였다. 손익분기점인 3000만을 넘어서며 상업적 성공을 거둔 것이 분명하다.

실제 역사 차이

무작위로 사람을 죽이고 나중에 후회한다는 묘사가 있지만 그 중에서는 그런 급격한 성격의 변화나 후회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예민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치열함이 강조된다. 사도세자가 죽인 유일한 사람은 자신의 의대증을 표현하기 위해 죽인 내시 한 명뿐이었다. 궁정에는 품계석이 없다. 이것은 정조 때 설치된 것이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도록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궁중 여성들의 복장도 현실과 다르다. 혜경궁의 첩지도 처음에는 높은 받침대가 없었던 것으로 후궁이나 공주들의 첩지는 전적으로 창작적이다. 다만 조선 후기에 당의는 겉옷의 일종이었으므로 저고리만 입고 궁궐에 등장하는 모습은 상당히 잘 재현된 부분이다. 세자빈이 시할머니인 인원왕후로부터 여러 가지 훈육을 받고 있을 때 화완공주가 동등한 자격으로 옆에 앉아 혼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실제로 또 다른 후궁인 조씨 부인의 자녀인 화유공주이다. 대리청정을 하는 동안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대부분 사실이나 내용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함경도 군영을 옮기는 일과 암자를 빌리는 문제로 신하들이 다투는 씬은 조정에서 실록에 기록된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또한 이때 호조판서는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였다. 그러나 극 중에서는 박문수라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았다. 주강 시간에 정조에게 질문을 했는데 명쾌하고 잘 대답하자 칭찬하며 삼백 년의 세월은 오직 세손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생각해 보면 이 부분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