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모: 반란의 시대는 정세가 어지럽던 조선 1728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이 시기의 최고의 검객 김호가 내통으로 의금부 순살로 좌천되어 왕위를 노리는 반역자 이인좌 일당과 맞서는 이야기이다.
인물 분석
김호는 내금위 일원이었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번번이 좌천되고 결국 자신의 무기를 대장간에 팔게 된다. 겨우 포졸 자리에 취직한 후 첫 출근 날 이인좌의 일당이 들이닥친다. 이 시대의 훌륭한 검객으로 소개되었지만 육룡의 길태미, 이방지, 무휼, 척사광처럼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검만 잘 쓰는 전형적인 무사의 모습이다. 임금이 극 중에 주인공에게 특별한 칭호를 주었다. 내금위 사태로 배신자와 주군을 제거하려는 어영청의 다섯 무사가 반역을 꾸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궁궐은 이미 배신자들로 가득 차 있고 홀로 임금을 지켜야 한다. 역사상 한 번도 기록되지 않았던 전투가 시작된다. 이인좌는 체포되고 투옥되었다가 잔당을 모으고 마지막 반역을 계획한다. 죽음은 자연사가 아니라 악의 무리에 의한 독살이었고 영조가 숙종의 태자가 아니었으므로 대비의 비밀 자문을 통해 원수를 갚는다는 것이었다. 먼저 청주를 공격하여 군사 이봉상을 죽이고 병력을 모아 스스로 대장군이라 칭하고 사방으로 명을 보냈다. 만석은 김호를 거둬 키워준 사람으로 그를 삼촌이라고 한다. 때로는 툴툴대며 온갖 욕설을 퍼붓지만 면신례 돈까지 제공해주기도 한다. 이 때 당시 신참 신고식으로 면신례는 상당히 가혹했다고 한다. 그래서 돈으로 선후배들과 동기들을 매수하기도 했다. 도만철은 잔당 무리들의 지도자로 서남 지역의 사투리를 사용했다. 황진기는 지리산 일대를 지배하는 도적단의 두목이며 지금은 감옥에 갇힌 죄수이다. 반전인 역할로 윤서영은 대비전의 궁녀인 줄 알았지만 평범한 여전사로 밝혀진다. 임금은 극 후반에 나오는 대사를 보면 악역 같다. 군주는 하늘이 주신 것이며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인다고 했다. 금단비는 영조가 경종을 독살하고 자리에 올랐다며 이인좌가 공모하였다고 주장하지만 결국 영조의 편을 든다.
흥행과 혹평
줄거리와 극의 성공 확률이 그다지 좋지 않다. 역사 연구도 엉망이라 주된 설정이 바로 망국이었던 경복궁이다. 광화문 바로 남쪽에 인왕산만 한 산도 있다. 사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최후의 전투가 시작된다는 카피는 대체 허구일 뿐이다. 또한 주인공이 조선에서 가장 강한 검객이라고 말해 설정이 높게 되었다. 왕을 죽이기 위해 내란을 모의하고 궁궐에 침입해 관리들을 살해하는 무장 무리들을 상대하게 된다. 그 때 김호는 나는 포졸이니까라고 말한다. 칼을 쓸 기회가 많은데도 짧은 육각형 방망이를 고집하며 싸움을 이어간다. 상대가 장검을 들고 있든 무서운 철퇴를 들고 있든 적 서너 명이 넘든 간에 포졸이라는 이유만으로 묘하게 무기를 사용하지 않아 관객을 답답하게 한다. 결국 칼을 들고 있는 이인좌를 방망이로 공격하여 일격을 가해 동료를 죽음에 이르게 하며 무리한 상황을 연출한다. 낮은 지위로도 상대할 때 짧은 도구로도 칼을 휘두르는 병사들을 물리칠 수 있다. 하지만 반역자들이 무기를 들고 떼 지어 모여 있는 상황에서도 굳이 고수할 이유가 없다는 주인공의 힘을 보여주기 위한 연출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연출가가 의도적으로 새로운 파동을 일으키려 한 무리한 행보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더욱 황당한 것은 장면 연출 직후 검을 사용하는 행동이다. 역모로 왕과 궁정이 위험에 처했음에도 계속해서 포졸로서의 위치를 주장했다. 동료가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는 곧바로 칼을 빼들었다. 자연스럽게 이때부터 그가 주장해 온 직업적 위치의 논리는 단 한마디의 말도 없이 제쳐두고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혹평에 더하는 결과를 낳았다.
작품의 참고 소재
모티브로 이인좌의 난을 참고하였다. 소론의 일부 강경파와 몇 몇의 남인들이 경종의 죽음에 노론이 연루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발생한 시기는 무신년이었기 때문에 무신의 난이라고도 한다. 신임사화 이후 폐위되었던 노론당은 새로운 군주의 즉위와 함께 다시 정권을 잡았다. 앞서 노론 4인방 대신들을 모함했던 소론파의 김일경과 목호룡이 살해되었다. 나머지 당파는 이에 불만을 품고 기회를 노렸다. 1727년 음력 7월 노론파의 일부가 몰락한 것을 보고 이듬해 음력 3월 난을 일으켜 밀풍군 탄을 추대하였다. 목적은 소현세자의 차남인 밀풍군 탄을 주군으로 책봉하여 혈통을 확립하겠다는 것이었다. 경종을 애도하기 위해 모든 병사들이 상복과 비슷한 흰 옷을 입었다. 평안병사 이사성, 총경사 김중기, 금군 별장 남태징등과 교신하여 대내외적으로 소통하였다. 그러나 용인으로 은거하던 소론 원로 최규서가 이 사실을 조정에 보고하면서 계획은 무산되었다. 새로 부임한 무신 오명항 휘하의 관군에 의해 불과 3개월 만에 진압되었다. 그들은 2,300명에 불과했지만 수는 많으나 사실상 군대가 없는 무리들을 손쉽게 처벌하였다. 비록 단명한 내전이었지만 그 수는 비슷했고 내란 귀족들이 평정되기 전의 지방 세력도 진압하지 못하였다. 정세는 매우 좋지 못했고 반란 주동자들은 한양으로 압송되어 처형되었다. 이 사건 이후로 영남 지역이 소외되는 결과를 낳았다. 공격 장소는 청주였지만 가장 많은 음모자와 동조자가 남인의 본거지인 영남에서 나왔다. 즉, 안동 등 일부 지역의 양반을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정신적으로 동조하고 있었다. 남인 윤휴의 손자여서 영남 유생들의 후원을 받았다. 후에 대구부 남문 밖에 평영남비를 세우고 영남을 반역지역으로 단죄하였다. 소론은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선동가들은 대부분 강경파들이었기 때문에 권력은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다. 그 후 대부분의 권력은 노론에게 넘겨졌다. 50년 동안 안동을 제외한 경상도 사람들은 과거시험에 응시할 수 없었고, 조식의 제자들은 벼슬길에 오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허용된 후에도 필기시험 합격자에게 성적을 주지 않았다. 실제로 130년 후 대원군의 과거시험 개혁 때까지 금지는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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