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석기 시대는 인류 선사시대의 거의 전체 기간을 나타낸다. 석기를 가장 먼저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시대이다. 수준에 따라 구분되며 인류 문명이 약했던 시기로, 역사가 기록되기 이전을 의미하는 대부분을 차지한 시기였다.
고인류 모습 및 활동
뗀석기와 동물 뼛조각 등의 유적을 보아 약 1만 년 전부터 한반도에 고 인류들이 살기 시작하였다. 지구상의 모든 곳이 자연에서 왔기 때문에 넓은 지역을 이동하는 패턴에 의해서 유지될 수 있었다. 인간들은 동물의 뿔이나 뼈 도구로 고기를 잡고 사냥을 하며 과일이나 채집 및 수렵 등을 통해서 생계를 이어갔다. 처음에는 어로 이외의 특정 동물보다 수도 많고 잡기가 쉬워서 큰 체력 소모나 위험 부담 없는 벌레를 채집하였으나 주식으로 하기에는 힘들었다. 그리하여 이미 죽은 동물의 사체를 섭취하거나 혹은 맹수들이 남긴 동물의 사체 또는 빼앗는 등 방법으로 섭취하였다. 살다가 점차 능동적으로 사냥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냥은 인간에게 필요한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도록 식량을 공급해 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인간들은 정착하지 않고 이동하면서 소수가 모여 생활을 하였다. 강가나 들판에 막집을 지어서 삶의 터전으로 살았다. 생활지가 발견된 유적은 그리 많지가 않다. 그 이유는 썩기 쉬운 유기질이었던 나무나 동물의 가죽 등으로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후에도 침수나 퇴적 등 다양한 작용을 받아 흔적이 남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기둥을 세웠던 구멍이 남아 있거나, 불을 땐 자리가 남아 있는 등 이러한 흔적이 남아 있을 경우 이 시기의 주거지였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중요한 은신처로 자연의 변화에 따라 생긴 동굴이나 큰 바위 벽의 움푹 파인 공간으로 바위 그늘에 주거지로 이용하였다. 지혜롭거나 경험이 많은 사람이 무리의 지도자가 되었으나 권력을 가지지는 않았고 모든 인간들이 평등한 생활을 하였다.
시대 변동
처음 불을 발견하게 된 것은 번개나 화산 등 자연재해로부터 였을 것이다. 활활 타오르는 불 앞에서 무섭고 두려워서 쉽게 다가가지 못하였을 것이나, 호모 에렉투스 이후 불의 제어와 함께 인위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이때부터 인류 삶의 조건을 변화시키는 전환이 되었다. 불에 의한 열로 인해 추위를 견딜 수 있었고, 어두운 동굴에서도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 갈 수 없었던 추운 곳까지 갈 수 있게 되었다. 불빛으로 해가 저문 후에도 화덕 주위에서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함께 화덕 주위로 여럿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정보와 지식을 교환하여 인류 진화에 원동력이 되었다. 한편, 호모 에렉투스의 경우 치아와 턱의 크기가 작아진 반면에, 뇌의 용량은 현격히 증가하게 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치아와 턱의 운동량이 감소했다는 의미를 볼 수가 있다. 날고기와 같은 음식을 불에 익혀 먹었다는 결과일 가능성을 높게 볼 수 있다. 흔히 빙하 시대로 빙하가 최고로 발달한 시기이며, 빙기와 간빙기가 교대로 반복되었 빙하가 발달함에 따라 빙하가 증가되었다. 해수면은 현재보다 100m 이상 하강하였고 한반도 서쪽 바다(황해)는 이 기간 동안 많은 부분이 거의 육지화되었으며, 해안선은 제주도의 훨씬 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한반도 주변 지역에서는 육지화로 동물이나 인류의 이동이 쉬웠던 시기였을 것이다. 함경도 화대 장덕리 유적에서는 매머드의 화석이 발견되었는데 그 당시 한반도는 대체적으로 지금보다도 상당히 매우 추운 기후였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다시 해수면이 상승하게 되었으며 약 6,000년 전쯤 오늘날과 같은 해안선을 이루게 되었고 기후가 변하면서 동식물이 번성하여 초원 지대를 이루게 되었다. 인류는 일찍부터 돌을 주 재료로 하여 도구나 무기를 제작하였으며, 사냥하거나 생활하는데 아주 중요한 물건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돌은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고 존재하였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서 획득하기가 쉬웠고 제작하는 시간이 짧기도 하였다. 보존하기에도 용이하고 내구성이 좋아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도구 사용
도구의 발달 정도에 따라서 전기·중기·후기로 나누게 된다. 전기에는 자갈돌을 이용하여 한쪽면이나 양쪽면을 떼어낸 제한된 가공을 하였다. 기능을 부여한 소형 석기들인데 예로 주먹 도끼나 찍개류 등이 포함되어 있다. 중기에는 석기의 크기가 작아지고 사용 용도에 따라서 다양한 단계의 몸돌과 다각면 원구의 석기들이 있었다. 이 시기에도 무가공의 격지를 널리 사용한 전통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후기에는 일반적으로 끝은 좁고 측면이 날카로운 형태를 띠는 도구 제작이 이루어지는 시기이다. 이름처럼 돌로 만든 도구나 무기를 주로 사용하였다. 동물의 뿔이나 뼈 또는 상아 같은 단단하고 딱딱한 물질로 된 도구나 무기도 제법 많이 사용하였다. 흑요석은 특히 파손시켰을 때 날카롭게 갈라지고 가지각색의 원하는 모양으로 가공하기가 쉬웠는데 이는 주요한 무기 자원으로 거래되기도 하였다. 흑요석은 산출지가 한정적이고 그 성분에 따라 쉽게 특정할 수 있었다. 산출지 주변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어 먼 지역에서도 유물이 발견되기 때문에 국제 교역 같은 장거리 지역 간의 이동이나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의 서부 지역으로 전파되어 나이프형 석기의 조형과 돌남몰돌으로는 쐐기형 몸돌이 주류를 일고 있었다. 이 중에서 마주 보는 양끝에서 중심을 향해서 박리 작업을 한 흔적이 있어서 기술적으로 내몽골 지역과 연결되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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