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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한국사)

신석기 시대 생활 모습과 사회 체제, 신앙적 상징

by 한국 역사(한국사) 2024. 3. 20.

 

신석기 시대 생활 모습과 사회 체제, 신앙적 상징

신석기 시대는 채집경제에서 생산경제로 인류사회가 발전하였고 이러한 생산 경제로의 전환은 인류문화사에 전환점을 가져왔다. 오늘날과 같은 기후의 변화로 농업 생산에 적절한 환경으로 형성된 것이다.

생활 모습

시기로는 기원전 약 1만 년 전에서 4천 년 전의 시기에 해당되며, 인류 최초의 혁명인 농경과 목축이 시작된다. 오늘과 같은 기후로 변해 농업 생산에 적합한 시기에 접어들었다. 인간은 자신의 노동으로 식물을 생산해서 식량을 얻는 식량 생산 단계에 이르는 혁명적인 변화를 이루게 된다. 예술도 농경과 관련이 있다. 밭농사를 지으면서 동시에 이동하지 않고 물을 끌어다 쓰기 쉬운 강이나 바닷가 근처에 정착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동시에 물고기도 사냥하기도 하였으며 전에는 동물을 사냥의 대상으로만 생각했다. 이때 가축을 기르면서 구석기에 느꼈던 생존에 대한 두려움 즉, 굶어 죽는다는 것에 대한 걱정에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지역에 정착하면서 결정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추위였다. 강가나 바닷가에서 바람이 불면 온도가 10도씩 내려가는데 그래서 이 시기에는 땅을 1미터가량 파고 들어가서 집을 지어 생활하였다. 대표하는 유물로 간석기를 비롯하여 빗살무늬토기와 덧무늬토기가 있었는데 덧무늬토기는 한반도 남부의 일부 지방에서 발견되었다. 빗살무늬토기는 한반도 전역에서 출토되었다. 농경 생활을 하며 자연스럽게 토질이 부드러운 지역에 정착하게 되면서 음식물을 저장해 두는 밑바닥이 뾰족한 토기(질그릇)를 만들어 사용하게 된 것이다. 농사를 짓기 위해선 뗀석기보다 더 정교한 석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간석기가 등장하는데 돌을 곱게 갈아냈기 때문에 뗀석기보다 쓰임이 훨씬 많았다. 신석기 초기부터 간석기를 사용하였으나 농기구나 무기에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중기 이후이다. 특히 울산 대곡리반구대암각화는 조성된 바위그림으로 선사인의 생활상이 잘 나타나 있다. 대표적으로는 갈돌과 갈판이 있다. 갈판은 지금의 도마라고 생각하면 되고 갈판에 곡식을 올려놓고 갈돌로 갈아서 식량을 만들었다.

사회 체제

목축과 관련된 것도 있는데 가축을 기르다 잡아먹으면 가죽을 벗겨서 옷을 만들었다. 옷을 만들기 위하여 실과 바늘이 있어야 하는데 실을 만들어낸 게 바로 가락바퀴이며, 꿰매는 역할을 한 것이 뼈바늘이다. 새로운 문화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계 활동에 적합한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고 기술적으로 발전시켰다. 생산성을 높이고 효율적인 식량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이용하여 다양한 도구를 만들었다. 평등 사회였으나 여전히 생산량은 인간들끼리 나눠먹고 조금의 저장할 정도밖에 안 되었다. 이때 사회 모습에 있어서 중요한 변화가 나타나는데 바로 씨족이라는 사회가 형성이 되었다. 정착 생활을 하는데 가족이라는 혈연 집단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평등한 사회였지만 혈연끼리 모여 살기 시작하였다. 거의 대부분 인간들은 부족과 씨족으로 구성된 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다. 사회는 상대적으로 단순하면서 평등하였지만 보통 수렵과 생활을 선생 하기 때문에 더 계층적인 사회였다. 가축을 소유한다는 것은 경쟁력을 의미하였고 이는 곧, 부의 불평등을 전승하는 결과를 나타내었다. 대규모의 가축을 소유하게 된 목자들은 점차 보다 많은 가축을 소유하게 되었고 이것이 경제적인 불평등을 더욱더 심화시켰다. 문화는 여러 면에서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특히 기술혁신을 통한 생계형태의 다양화와 함께 생계수단, 생계도구, 의식주, 분묘, 종교의식, 원거리 교역 등이 새롭게 등장하는 문화요소이다. 구성하고 지지하는 이 지표들은 개별적으로 또는 결합하여 상호작용하면서 사회체제를 만들어 내었다.

신앙적 상징

당시 생산과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식량 획득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교역이 있었다. 생계 활동의 안전과 동식물의 풍요를 기원하는 제례 행위가 있었다. 농사를 지으면 자연환경의 중요성을 알게 되는데 흉년이나 가뭄, 수해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고, 두려움이 커지면 존경이 되고 존경이 극대화되면 신앙이 된다. 당시 사람들은 자연환경의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자연에 대한 관심이 컸다. 그래서 원시적인 형태의 신앙이 탄생하였다. 애미니즘은 자연현상(태양, 비 등)이나 무생물(바위 등)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따라서 산이나 바위 같은 자연물에는 신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자연재해의 공포에서 벗어나 식량의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마법 같은 의미를 부여하고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토테미즘은 동물이나 식물을 자기 부족의 숭배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무당의 무자를 잘 들여다보면 무당의 역할을 알 수 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있는데 땅의 인간과 하늘의 신을 연결해 주는 존재, 즉 그게 바로 무당인 것이다. 지금은 많이 없지만 예전에는 무당들이 굿하는 광경이나 현대 과학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작두 타기를 마을이나 동네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여기서 토테미즘은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가 된다. 토템은 집단의 상징이나 징표로 동식물을 내세우는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토템은 곰이다. 우리 모두 단군의 후손들이기 때문이다. 토테미즘은 지금도 아주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우리나라 유명한 사립대학의 상징을 생각해 보면 연세대학교의 독수리, 고려대학교의 호랑이, 이화여대의 배꽃 등등 모두 동식물을 대학의 토템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