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종 이호는 당대 왕들의 기록들을 비롯하여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학문을 찬양하였다. 인품과 성품을 칭송한 기록이 남아있다.
생애와 인품
아버지인 중종과 어머니인 윤씨의 넷째 아들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가 임신하였을 때 꿈을 꿨는데 그 꿈에 누군가가 나타나 억명으로 이름으로 만들어라고 말하였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생각해 두었다가 벽에 글자를 써놓았고 후에 아명으로 지었다. 그의 어머니 윤씨는 인종을 낳은 지 일주일 만에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친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았고 외가의 정치적 지원을 받았다. 자신을 낳자마자 죽은 어머니를 섬기지 못하는 게 가슴이 아파 키워준 계비에게 더욱 효도를 다하였다. 직접 중종의 이불 자리를 확인하기도 하며 이렇듯 효심도 깊었다. 어렸을 때 형제들과 우애가 좋았는데 그중 누나인 효혜공주가 일찍 죽자 가엾어하다가 병이 날 뻔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모습들을 볼 때 유교의 이상적인 군주로 알려져 있다. 말수가 적고 조용하며 너그러운 성품과 금욕적인 생활로 전형적인 선비의 모습도 보였다고 한다. 막 걸음마를 떼면서 세 살이 되던 해부터 글을 읽을 정도로 총명하기까지 하였으며 학문을 좋아했다. 천자문을 이때 떼었다고 하니 그 말을 전해 듣고 시험하기 위해 천자문을 외워보라 하니 줄줄 외웠다고 한다. 중간 부분을 외워 보라 하니 줄줄 외울 뿐 아니라 뜻까지 정확히 외웠다고 한다. 이에 아버지는 크게 기뻐하며 과외 스승을 붙여 교육시키고 여섯 살이 되던 해에 세자로 책봉하였다. 이후 여덟 살에 성균관에 입학하여 글을 읽고 쓰며 공부하는데 소홀히 행하지 않았다.
위협적인 사건
탄신 무렵부터 누군가가 죽은 쥐 한 마리를 뜯어 불태운 뒤 동궁 창문에 매달아 저주하였다. 또한 동궁 빈청 남쪽에서 사람의 머리 모양을 한 물체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누군가가 이 모습에 머리카락을 붙여 얼굴 생김새 등을 조각하여 목판 위에 올렸다. 그 목판 위에는 세자의 몸은 멸할 것이며 세자의 주군의 몸은 목이 졸릴 것이다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이 저주의 사건으로 장남이자 이복형이었던 복성대군과 이복형의 어머니인 경빈 박씨가 사건의 배후로 지목이 되었다. 대간의 탄핵을 받은 복성군과 경빈 박씨는 마침내 처형이 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의 배후가 인종의 누나인 효혜공주의 남편과 남편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게 되었다. 이후 복성군과 경빈 박씨의 신분과 폐위되었던 혜순공주와 혜정공주의 작위를 회복시켰다. 또한 어느 날 동궁에 불이 난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불에 타 죽을 뻔했던 사건이었다. 설에 따르면 불이 나자 계비가 죽이고자 벌인 일이기 때문에 그에 응하는 것이 효도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자리에 앉아 불에 타 죽기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자 아버지 중종이 밖에서 눈물을 흘리며 간곡히 어렸을 때의 아명을 부르며 아버지에게 불효를 저지를 것이냐며 이야기를 하자 그제야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이러한 사건이 궁궐 밖으로도 소문이 퍼지며 세상에 나돌았으니 계비와 관계에서 많은 갈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훗날 위기를 겪었던 사건들에 대해서도 배후자들을 처벌하기보다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천벌이라며 자해하는 진술을 하였다. 세자로 있던 오랜 시간 동안 식중독에 걸렸던 사건도 있는데 보통 당시 음식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음식을 먹기 전 상태를 간별하는 기미나인이 있었다. 그럼에도 식중독에 걸렸다면 충분히 누군가가 자신을 해하려 한다는 의심을 해볼 만하였다. 그렇게 하여 항상 음식을 먹는 것에 조심하였고 직접 보는 눈앞에서 부인이 만들어 주는 음식만 간간히 먹었다고 한다.
승하 원인
아버지인 중종이 죽고 오랜 세자 생활을 접고 조선 제12대 왕이 되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극히 슬퍼하고 애통하며 음식을 격렬하게 거부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식사를 잘하지 않았던 그는 더욱 금식하고 곧바로 제사를 지내고 사신을 접대하는 일정을 소화하였다. 신하들이 이를 걱정하여 휴식을 취하며 고기를 먹고 체력을 보충하기를 강요하였으나 이마저도 거부하였다. 세자시절부터 왕이 되어서도 목숨이 위태로운 시달림 속에 있었다. 신하들의 거듭된 치료를 받을 필요 없다며 괜찮다고 주장하였지만 왕의 자리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후 몸에 이상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몸 상태는 급속도로 악화되어 고열과 실신에 시달렸다. 그는 몸이 아픈 와중에도 그저 백성들만 생각하였다. 인자하고 학문적인 성격을 지닌 그는 유교를 바탕으로 좋은 정치를 펼치려 하였다. 대역과 폭행 등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제외한 잡범들의 죄를 사면하는 포고령을 내렸다. 병세가 더욱 악화되고 위독해지자 이복동생인 경원대군 즉 명종에게 왕의 자리를 물려주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붓을 들어 유서를 쓰려고 하였으나 끝내 쓰지 못하고 탄식하며 경복궁에서 승하하였다. 계모의 권력욕과 과도한 압박으로 병약함 속에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포부를 펴지 못한 채 재위 겨우 9개월 만에 사망하였다. 조선의 역대 임금들 중에서 재위 기간이 짧기로 손가락에 꼽힌다. 사망하고 뜻대로 이복동생인 경원대군인 명종이 즉위하였는데 이를 두고 계비에게 독살당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무덤은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하고 있다. 왕비와 나란히 묻혀 쌍릉을 이루고 있으며 유일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생전에 지극했던 효심을 기린다는 뜻으로 묘의 이름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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