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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한국사)

문종 이향 생애와 즉위, 발자취와 업적, 말년과 인물 평가

by 한국 역사(한국사) 2024. 4. 10.

문종 이향 생애와 즉위, 발자취와 업적, 말년과 인물 평가

문종 이향 묘호의 뜻은 문치를 발전시켜 다스렸다는 의미이다. 역사와 군사적 방법을 집대성하여 사회적 기반을 구축하고 제도를 확립하고자 하였다.

생애와 즉위

아버지인 세종대왕과 어머니인 소헌왕후의 장남으로 모든 이들에게 많은 총애를 받았고 훌륭한 인물이었다. 6세의 어린 나이로 세자로 책봉되었다. 이후 아직 초등학생의 나이었던 때에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명나라 사신들에게 잔치를 베풀기도 하였다. 사신들이 조선은 경치가 좋기로 유명하고 산수가 아름답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태어났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칭찬을 하였다. 큰 체격과 수염이 풍만하여 관우와 같은 외모를 가졌다고 한다. 당시 미의 기준으로 볼 때 외모는 명나라의 홍시황제와 비슷한 시기에 생겼을 수도 있다고 보았다. 홍시황제 역시 잔병을 많이 앓았지만 초상화를 보면 관우와 똑같이 큰 체구와 풍만한 수염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학문에도 능하여 세자로 책봉된 지 3년 만에 공자의 논어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다음 해에는 맹자를 비롯한 경전을 빨리 익혀서 신하들과 양반들의 기대를 높이기도 하였다. 어려서부터 함께 집회와 양허에 참석하여 국정 운영을 직접 체험하기도 하였다. 20살이 넘어 어른이 되었을 때 친히 아버지를 섬기며 실용적인 일을 도우기 시작했다. 세종의 임기 말기에 건강이 급속히 악화됨에 따라 반복적으로 대리 행정을 제안하였지만 신하들의 자연스러운 반대로 이를 달성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미 강무로 하여금 그에게 업무를 대신하게 하고 종묘에서 제사를 지내게 하는 등 왕의 대리인인 것처럼 순차적으로 업무를 인계하고 있었다. 대리하여 각종 행사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세종은 건강 문제가 악화되는 말년에도 아무런 방해 없이 학문적 성취에 매진할 수 있었다. 왕이 되기 전 짧은 기간 동안 관직에 대한 경험도 축적하여 실수 없이 직무를 수행했다. 이러한 과정으로 순조로운 왕위 계승을 준비할 수 있었다.

발자취와 업적

약 30년 동안 세자로서 아버지인 세종을 보좌하면서 아버지가 병에 걸렸을 때 대신하여 국정을 처리하였다. 민정과 신하들이 동등하게 임명되도록 보장하고 언론의 자유를 개방하고 민정을 이해하는데 노력하였다. 업무적으로 국정일을 돕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이 기간 동안 실질적인 정치 경험을 쌓았으며 유교뿐만 아니라 천문학 그리고 산술에 밝았다. 따라서 정치 방식과 분위기는 세종 후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즉위할 당시 선대왕들 때에 비해 왕권이 약간 하락하였다. 이미 수양대군과 안평대군 등 종친의 특이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신하들이 종친을 탄핵하는 등 상호 긴장의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 시대에는 언어와 관의 언론이 모든 정치 영역에 걸쳐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남을 호불호하는 경향에 대한 유교의 반발로 해석되었다. 비록 당시 왕실 당국의 언론이 활발하고 왕권이나 다른 권력의 제약을 받지 않았지만 자주 조언을 구하였다. 대화의 주제나 시간의 길이와 폭이 길고 넓지 않다고 생각하여 6품 이상의 조정 관리들에게 윤허하여 묻고 답하는 시간을 주었다. 또한 그는 낮은 지위에 있는 신하들일지라도 부드럽게 대하고 그들의 말을 귀 기울여 담아 들었다. 학문을 사랑했고 학자들을 아끼고 동국병감과 고려사와 같은 책을 많은 책을 편찬하였다. 3군의 12개 중대를 5개 중대로 줄이면서 군대 체계를 개편하였고 반면에 병력을 늘리고 각 군종을 5중대로 배분하였다. 군사력에 대한 조치는 단순히 개인적인 관심이 아니라 절실히 필요한 조치였다. 농업과 과학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대표적인 신하인 장영실을 비롯하여 발명된 조선 시대의 측우기, 앙부일구, 해시계와 같은 기록 시스템을 만들었다. 덕분에 오늘날까지 강수량에 대한 빅데이터가 가장 오래 남을 수 있었다. 

말년과 인물 평가

어렸을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세종을 위해 마당에 벚나무를 심었고, 벚나무의 열매가 익으면 직접 따서 진상하기도 하였다. 어머니 소헌왕후는 죽기 전에 설탕을 맛보고 싶다고 했었는데 당시에는 진귀한 음식이어서 결국 설탕을 맛보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후에 설탕을 얻었을 때 소헌왕후의 위패에 올렸다고 전해진다. 조선 역사상 최초로 선왕이 승하하여 자연스럽게 왕위를 이어 물려받은 왕이다. 이러했던 그는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짧은 재위 기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어린 아들 단종이 왕위에 올랐다. 한 나라의 군주로 있었던 기간이 매우 짧았기 때문에 젊게 죽지 않았다면 아버지 세종만큼 버금가는 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종의 건강이 급속히 나빠지게 되면서 말기부터 대신 업무를 살피고 정치를 하였는데 그 기간을 계산해 보면 재위 기간은 약 7년이었다. 이러한 대리 청정은 전폭적인 지원으로 이루어졌고 특별히 관리들에게 세자였던 아들에게 왕이라 부르라고 명령했었다. 때문에 세종의 재위 기간 중 말기에 해당하는 기간은 사실상 그의 재위 기간으로 여겨진다. 차기 임금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고 맏아들로서의 전통성도 완벽했기 때문에 위신도 대단하였다. 역사에 사례에는 없지만 만약 5~10년만 더 살았더라면 단종은 충분히 커서 왕실에 수렴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완벽한 정통성을 지니고 많은 업적을 쌓아 기록을 써 내려가 조선의 역사가 바뀌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의 무덤은 오늘날 경기도 구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