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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한국사)

고려 시대 사회 모습, 여러 차례 전쟁, 말기와 몰락

by 한국 역사(한국사) 2024. 3. 25.

고려 시대 사회 모습, 여러 차례 전쟁, 말기와 몰락

고려 시대 왕조는 불교를 종교적으로 적극 장려하였다. 부처의 힘으로 외적을 방어하겠다는 마음으로 8만 1,258판의 나무판에 불교 경전을 조각해 종이에 인쇄한 팔만대장경을 조판하였다. 이 시대 불교문화의 정수이자 세계 목판인쇄의 최고의 유산이다. 

사회 모습

신라와 후백제를 통합한 이후 멸망하기까지 475년간 한반도를 지배하였던 왕조이다. 통일신라 후기 현재 개경 지역의 송아에서 귀족이었던 왕건이 건국한 이후 이성계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한반도에 존재했던 왕국이다. 후백제와의 공방 끝에 신라를 먼저 흡수한 뒤, 후백제까지 멸망시켜 결국 936년 고려에 의한 후삼국의 통일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또한 고구려 유민이 세운 발해는 말갈의 원주민을 피지배족으로 하는 국가로 거란에게 멸망하였다. 발해 유민들을 받아들여 백성으로 합류시켰고 후백제를 공격하는 반면 신라에는 보다 더 적극적인 포용 정책을 펼치며 포괄적인 의미의 삼국 통일을 이루었다. 이후 4대 국왕인 광종은 왕권의 안정과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하기 위하여 노비안검법을 실시해 양인을 대폭 늘렸다. 과거제도를 도입해 새로운 인재를 등용하면서 국가의 기틀을 다졌다. 공신과 호족 세력을 제거하여 왕권을 강화하였으며 이어서 경종 때는 전신과 제도를 실시하였고 성종은 지배체제를 정비하였다. 한편 거란이 세운 요나라는 친송정책에 반감을 품고 두 나라의 외교관계를 단절시켜 자신들의 영향하에 두고자 하였다. 거란은 993년, 1010년, 1018년 세 차례에 걸쳐 침공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11세기에 이르러 점차 그 사회와 문화가 향상되어 갔다. 10세기말에 성종이 시행한 제도정비는 주로 당을 모방한 것이어서 현실에 부합되지 않는 요소가 드러났다. 사회의 상황에 맞추어 부분적인 개편을 끝내면서 일대의 제도정비를 완료하게 되었다. 문종 때에 이루어진 일련의 시책이 그 예로 볼 수 있다.

여러 차례 전쟁

문벌귀족은 정치권력을 장악하여 막대한 토지를 점유하였으며, 경제적인 부를 축적하는 등 사회의 절대적인 지배세력이 되었다. 이와 함께 대각국사 의천은 문종의 넷째 아들로서 일찍이 송나라에 가서 불교의 깊은 경지를 터득하고 돌아와 교장도감을 설치하였다. 당시 동양의 불교문화를 집대성하는 등 문화적 업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비교적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이전 시대의 문화가 보여준 사회적 역할의 한계에 기인한 바가 크다. 다양한 방향에서 한국의 고유한 비전을 찾고자 한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지배층 내에서 가문의 귀족들과 그 측근들 사이에 정치권력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기 시작하면서 정치적 혼란이 빚어지기도 하였다. 한편으로는 귀족세력과 측근 세력 간에 정치적인 권력을 두고 대립이 치열해지기 시작하였다. 문인 중심으로 사치와 향락을 일삼는 귀족 사회였던 후기에 이르러 여러 사건의 계기로 그동안 참아왔던 무인들의 불만이 폭발하면서 무신정변이 일어났다. 최후로는 최충헌, 최우로 이어지는 최씨 무신 정권이 수립되었다. 문인 중심에서 무인 중심으로 정권이 바뀌게 되었다. 또한 집단적인 도적이 되어 산발적으로 각지를 소란하게 하던 유민들은 무신정변을 전후하여 전국에서 전국 도처에서 벌떼처럼 일어났다. 강성해진 유목민인 몽골족이 통일 국가를 이루면서 금나라를 멸망시키고 한반도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몽골은 지나친 공물을 요구했고 이를 거절하자 결국 1231년부터 1차 침입 이래 7차례에 걸쳐 몽골이 침입해 왔는데 이른바 고려-몽골 전쟁이다. 장기간의 전쟁으로 국토는 황폐해지고 수많은 문화재가 소실되었다. 당시 집권자였던 최씨 무신 정권은 조공 요구와 간섭에 반발하여 수도를 강화도로 도읍을 옮겼고 방비를 강화하였다. 결국 1270년 최씨 무신 정권이 몰락하자 비로소 개경으로 환도하고 더불어 몽골과 강화를 맺어 전쟁은 끝이 났다. 

말기와 몰락

원의 간섭기 동안 몽골의 정치적 간섭을 받게 되었으며 또한 새로이 등장한 권문세족은 불법 행위로 사회 모순을 격화시켜 정치는 비정상적으로 운영되었다. 신돈이 제거되고 공민왕이 시해되는 등 공민왕 때의 개혁 노력이 실패하자 정치기강이 문란해졌다. 백성들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지는 등 사회의 모순은 더욱 심화되었다. 여기에 왜구 홍건적 등의 침입으로 사회는 더욱 피폐해지게 되었다. 왜구와 홍건적을 진압하면서 성장한 신흥 무인 세력의 이성계는 정도전을 위시한 신흥 사대부들과 결합하였다. 신흥 사대부들은 점차 권문세족을 압박하는 개혁을 확대하여 경제·정치적인 기반을 확보하였다. 그리고 신흥사대부들이 양반 관료가 되어 마침내 이성계를 국왕으로 추대하였다. 옹립함으로써 조선 건국을 하는데 주체가 되었으며,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바뀌게 되었다. 이후 유교의 이념을 구현하는데 진력을 다하였다.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의 사회적 제도를 마련하여 대외적으로 사대교린의 우호정책을 펼쳤다. 이때 정치적 주장을 달리하는 붕당이 형성되어 성리학적 정치 운영의 형태가 전개되었다. 시대의 전환은 왕실과 왕조에 대한 새로운 종언이자 시작이었다. 영토와 백성을 위한 연속이었고 국가 체제 내를 포괄하는 지배층 세력 교체의 성격이 강하였다. 그리고 정권 교체의 이면에는 광범위한 사회 변화 속에서 모색되었던 개혁이 확고한 방향을 설정하고 새로운 체제를 구체화하는 결실을 맺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