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 시대에는 선진 문화와 접촉이 많아 갱신이 빠르고 전투력도 뛰어나 어느 시기에도 상상할 수 없는 기록을 쌓았다. 이를 바탕으로 패권을 유지한 강대국이었다.
정치와 경제
이 시기가 전개된 것은 일반적으로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이 등장할 때부터 대략적으로 분류되었다. 실제로 한반도에 다른 소국 없이 삼국만 존재하던 시기는 가야제국이 신라에 병합된 562년부터 이다. 백제가 멸망한 660년까지는 98년에 불과하였다. 이전의 시대는 사국시대라고도 일부 학자들은 보고 있다. 가야가 완전히 소멸된 이후에도 한반도 밖에 있으면서 한국사의 영토로 여겨졌던 탐라와 같은 여러 소국들은 계속해서 반독립적인 상태를 유지하였다. 고구려는 2~3세기 후반에는 형제간의 상속에서 부자간의 상속으로 왕위 계승이 바뀌었다. 이러한 왕위 계승 방식의 변화는 왕권이 더욱 견고해졌음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된 것이 연나부 출신의 왕비를 맞이하는 풍습이 등장한 것이다. 왕실이 연나부 세력과 결탁하여 왕권에 반대하는 여러 세력을 진압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왕권의 강화를 말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왕권의 강화와 중앙집권적 국가체제의 확립을 바탕으로 두었다. 요동을 향해 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대동강을 향해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려고 하였다. 더 활발한 움직임은 4세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동아시아의 국제 정세는 급변하고 있었다. 중앙 평야의 서진 왕조는 쇠퇴하였고, 북쪽의 유목민 지역에서 활동했던 흉노·갈·선비·주·강 등 여러 부족이 발생하였다. 또한 3~6세기 사이 철기의 보급과 생산능력의 발달을 바탕으로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를 구축하며 성장하였다. 기본적으로 중앙집권체제를 토대로 한 국왕과 지방세력인 각 부의 연맹 왕국(전제 왕권) 또는 귀족정치의 형태였다. 고구려에는 5 부족 연맹체제가 있었으며 태조왕 이후 갖추어 나갔다. 백제 역시 마한의 작은 소국으로 이룬 고구려-부여계의 이주집단으로 발전하여 3세기 고이왕 때 부를 형성하였고 틀을 갖추게 되었다. 신라에는 이보다 늦은 시기에 중앙집권화 되었고, 6부가 있었다.
생활 모습
기록에 의하면 초기부터 화폐가 사용되었으나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고 주로 상품으로 화폐의 가치를 대신하여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 된다. 신라에서는 수도 경주에 시장을 열고 감독하는 기관을 설립하였다. 삼국은 비슷한 언어를 공유하였다. 백제와 고구려는 부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건국 신화를 공유하기도 하였다. 중국 측의 기록에서도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서 고구려와 동예 옥저의 말을 비슷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양서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복식과 예절, 언어가 유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로부터 자연신과 조상신을 믿었다. 국가가 시조신과 수호신을 숭배하였고 무속이나 점괘와 같은 민간신앙이 대중들 사이에서 유행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신앙은 국가의 최고 이념이나 사회의 지도 이념으로 적합하지 않았다. 불교는 인도에서 티베트와 중국을 거쳐 한국에 도착하였다. 372년 고구려를 시작으로 국가적·사회적 요구에 부응하여 삼국 구성국 모두의 국교가 되었다. 4세기에 율령을 제정하고 지방제도와 중앙조직을 개편하여 왕권 강화에 힘쓰기 위하여 불교를 수용하였다. 불교를 수용함으로 왕권을 강화 및 귀족들의 특권 강화를 정당화하였다. 372년 고구려는 중국의 전진을 통하여 소수림왕 때에 불교를 수용하였고 384년 백제는 동진에서 침류왕 때에 불교를 받아들였다. 527년 신라는 법흥왕 때에 고구려를 통하여 불교가 전래되었는데, 1세기 가까운 민간전승을 거쳐서 비로소 불교를 국가적으로 공인하였다. 이 시기 동안 귀족적이고 불교를 중심으로 한 문화가 발달하였다.
예술의 발전
백성들의 정신적 통일에 기여하고 학문과 예술의 발전에 기여하였으며 중국 및 서양의 문화를 전래하기도 하였다. 특히 원광과 같은 고승이 나타나 세속오계를 통해 사회윤리와 국방이념을 확립하였다. 각각의 국가들은 독특한 문화적 전통을 발전시켰다. 특히 벽화, 탑, 불상 등 예술 분야에서 뛰어났으며, 고구려의 예술은 웅장한 양식을 가지고 있었다. 백제의 예술은 우아함과 섬세함을 풍겼고, 신라의 예술은 소박하면서도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유지하였다. 야금학, 제련, 천문학과 같은 과학 분야에서도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한국의 선조들은 예로부터 노래와 춤을 좋아했고 중국과 불교 음악의 영향을 받아 음악이 더욱 발전하였다. 고구려의 시로는 유리왕이 썼다고 하는 황조가가 있고, 백제의 시로는 정읍사와 지리산가가 있다. 신라에서는 혜성가와 서동요 등의 향가가 성행하였는데 이 두문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노래가 인기 있게 되면서 악기들도 발전하였다. 풍경무늬 벽돌과 기와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사상을 구현하고 금동 향로는 불멸자들이 사는 이상향을 표현하였다. 고구려에는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를 포함한 많은 악기들이 있었고, 왕산악은 거문고를 만들었고 100곡이 넘는 노래들을 작곡하였다. 백제의 음악은 고구려의 음악과 비슷했고, 일본에 전래되어 일본 고대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신라의 악기에는 거문고, 가야금, 피파, 피리 등이 있다. 옥보고는 거문고 명인으로 신라 음악에 어울리는 30여 곡을 썼고, 백결은 방아타령을 남겼다. 또한 가야금을 만든 우륵은 많은 가야금 가락을 만들어 보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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