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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한국사)

고산자 대동여지도 줄거리 내용 속 평가, 한반도 지도, 인물 정보

by 한국 역사(한국사) 2024. 6. 10.

고산자 대동여지도 줄거리 내용 속 평가, 한반도 지도, 인물 정보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은교로 유명한 박범신 작가가 쓴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강우석, 차승원, 유준상이 출연하였다. 공개된 영화 정보에 따르면 목판화와 함께 기록이 사라지고 왜곡된 역사가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줄거리 내용 속 평가

학계에서는 박살 난 국민조사설, 백두산 등반설, 옥중 사설, 목판 태우기설 등이 모두 채택되어 국민들의 우려가 컸다. 다행히 이 내용은 촬영술과 영화 발전을 위해 크게 활용되었다. 흥선대원군은 김정호와 정치적 대립을 하지도 않았고 지도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대하지도 않았다. 양이 드립은 극 중 한 번쯤 나올 법한 중요하지 않은 대사였는데 예고편을 보면 답이 없는 것처럼 편집되었다. 논란에 대해 강우석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국립중앙박물관 목판을 실제로 촬영에 사용했다고 함으로써 가설이 사실이 아니라는 지식을 피력했다. 보면 알게 될 것이라며 재현 문제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원작과 내용에도 다소 차이가 있다. 주인공이 고문을 당하지만 대신 한씨가 사적으로 붙잡혀 린치를 당하고 지인들을 변호해 풀려나는 장면이 나온다. 갈등을 빚던 안동 김씨가 목판을 노린다는 이유로 두 차례나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일로 조선의 암울한 현실을 절망하고 자료와 스케치를 직접 불태운 뒤 떠나고 은둔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설정된다. 본인을 좋아했던 여인과 딸은 천주교 신자였지만 박해로 인해 둘 다 체포되어 순교한다. 여인은 참수되고 딸은 심한 고문으로 인해 처형되기도 전에 감옥에서 죽는다. 자신이 발견한 현실은 타버린 재와 같지만 평생을 바친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 여정에 몸을 싣는다. 정확한 이론들을 사용했다면 시작 전이나 끝날 때쯤 관객들에게 드라마화되었다는 사실을 알려 잘못된 역사 인식을 덜 갖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론이 없으니 모르는 사이에 거짓된 내용을 믿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예고편을 교묘한 편집으로 인해 본편과 괴리감이 있었다는 점도 지적해야 할 부분이다. 구조는 연출가의 전형적인 초반에는 코믹, 후반에는 울음을 따르고 있다. 인물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어 작가의 상상력이 여기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개드립이나 한심한 사람으로 그려지며 각성하는 것도 전혀 멋지지 않다. 

한반도 지도

대표적인 한반도 지도로 알려져 있으며 오늘날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다. 근대 조사 이전에 제작된 것 중에 가장 정확한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국방의 요충지, 부와 세금이 나오는 곳, 군대를 모을 수 있는 근원지, 지리가 여행에 잘 알려져 있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는 이용하여 침략하는 적을 막아내고 사나운 무리를 없애야 한다고 하였다. 때론 평화로울 때는 활용하여 나라를 관리하고 백성을 다스린다고 했다.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복사의 오류를 방지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주기적인 내용을 단순화하고 오래된 것을 현대화하기 위해 표를 사용했다.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22장으로 만들어 상하를 연결하면 각 도의 지리가 되고, 모두 연결하면 전국의 지도가 되어 사용이 편리하다. 또한 접으면 책 크기가 되어 휴대가 간편하다. 전통적인 제작 방식을 따랐으며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확대와 축소 시 서양의 과학기술을 도식화하여 추가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정확한 표고는 알 수 없으나 대략적인 높이는 큰 것과 작은 것으로 나눌 수 있다. 배가 뜰 수 없는 강을 표시하지 않는 등 군사적, 상업적 목적으로 유용하다. 1898년 일본 육군은 경부선 부설을 목적으로 측량사 1,200명과 조선인 200~300명을 비밀리에 고용하였다. 한국의 지리를 조사하여 5만 분의 1에 해당하는 자료를 300부 만들었다. 후에 존재를 알게 되자 그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공들여 만든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1권 10면은 범례를 나열한 것이다. 여기서 총 14개 항목은 서로 다른 기호로 표시하여 채색하였는데 이 경우 사용된 색상과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10리마다 표기하여 실용적인 목적으로 다양한 지역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조선시대 생활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는 우수한 정보지이기도 하다. 

인물 정보

장 도미니크 카시니가 서유럽에서 도보로 측량하여 정립한 제작자로 알려진 것처럼 한국에서도 김정호는 같은 인물로 꼽힌다. 직접 제작했을 뿐 아니라 당시 편찬된 국내외 자료를 종합해 새로운 지도와 예상도를 고안한 학자였다. 관련된 유적은 많이 남아있지 않으나 한성부 종로 쪽에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유추해 보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되며 중인 출신으로 예측된다. 김정희와 교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실학에 입문한 것으로 예상된다. 지지자로는 최성환과 서문을 쓰고 제작을 의뢰한 신헌 등이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어린 시절 산을 시찰하러 갔다가 길을 잃고 헤매다 암자에서 선인이 대뜸 호통을 쳤다. 산에 들어와서 뭐하냐는 소리에 처음에는 겁을 먹었으나 이내 대장부가 하려는 일을 어찌 그리 가볍게 말할 수 있겠냐고 분개하여 말했다. 그러자 선인이 갑자기 껄껄 웃으며 산의 뿌리를 찾는 자라는 뜻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현실적으로 19세기 중반 당시 조선의 치안과 교통, 통신 수준을 고려할 때 혼자서 조선 팔도를 돌아다니며 처음부터 끝까지 전국 전체를 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기존 자료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직접 일부 지역을 방문했겠지만 신화적인 요소로 보는 수준은 아닌 듯하다. 또한 우리가 아는 대로 개인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반대로 국가의 지시에 따라 비변사와 규장각 등 중요한 자료를 모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증명하듯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여러 조각기법이 발견되고 있어 광범위한 지원을 받았을 거라 예상한다. 이를 바탕으로  당시 사람들의 평가와 남아 있는 유물들로 미루어 볼 때 지병 등으로 자연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옥중에서 사망했을 가능성은 낮다.